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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소마> 영화 정보
'당신은 선택됐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선택은 무섭고 섬찟하다. 장편영화 데뷔작 <유전>으로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가족력을 소재로 한 음습하고 찜찜한 공포의 끝을 맛보게 하더니, 이번엔 밝고 아름다운 공포라고? 포스터부터 굉장히 어리둥절하지 않은가. 이것이 과연 공포영화의 포스터란 말인가. 울고 있는 여인의 모습과 상반된 아름다운 화관과 환한 푸른 배경. 90년에 한 번 9일간 진행하는 축제에 선택되었다는데 축제의 한복판에서 공포스러운 사건이 어떻게 벌어진다는 것이지? 벌써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단언컨대 그동안 봐왔던 어떤 공포영화보다 색다르고 특이하니, 뻔한 클리셰와 점프스케일에 지친 관객에게 일 순위로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영화는 호불호가 굉장히 갈릴 수 있다. 스토리텔링이나 서사적 전개보다 기이하고 기괴한 분위기 자체에 몰입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알려지기로는 <미드소마> 또한 감독의 자전적 이별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는데 이 사람 대체 어떤 삶을 산 것인가. 잔인한 장면은 물론 수위 높은 장면도 포함되어 있어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러닝타임은 감독판 기준 171분. 꽤 긴 편이니 방광을 딱 부여잡고 보시길.
줄거리 및 등장인물
일가족을 모두 잃은 슬픔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대니가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 그리고 그의 친구들과 함께 친구 중 한 명인 펠레의 고향 스웨덴 헬싱글랜드의 호르가 마을에서 열린다는 하지 축제 '미드소마'에 참여하게 되면서 겪는 기이한 일에 대해 그린다. 한여름의 낮이 가장 긴 날 열리는 축제인 만큼 관객들은 두려움이나 긴장감을 내려놓은 채 가벼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는데 축제 준비로 한창인 마을은 꽃으로 꾸며져 너무나 아름답고 화사하지만 속지 마시길. 시놉시스에 소개된 문장처럼 꽃길인 줄 알고 들어간 그 길은 다름 아닌 지옥길이다. 인류학 전공자들인지라 특별한 논문 주제를 찾고 있던 그들은 이 특별한 전통 축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는데, 한밤중이 되어도 환한 백야현상 아래 벌어지는 생경한 풍습에 매료된다. 축제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인신 공양이나 정체 모를 음식과 음료를 다 함께 먹는 등 괴이하고 이상한 일을 경험하지만 논문을 생각하여 애써 무시하며 상황을 지켜본다. 그들과 따로 합류한 커플이 더 이상 못 보겠다며 중도 하차하겠다고 난리를 피운 이후 사라지고, 일행들 간에 떠나려 하는 자와 남으려 하는 자로 나뉘어 티격태격 하지만 대니는 두려움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5월의 여왕'을 뽑는 의식이 진행되고, 이방인으로 축제를 관전하러 왔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사실 그들 또한 이 축제의 일부로 초대된 것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며 충격에 빠진다.
결말 해석 후기
호르가 마을 사람들은 죽음을 기쁨 이상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죽는 것을 하나의 숭고한 의식으로 생각한다. 0~18세까지는 봄, 18~36세까지 여름, 36~54세까지 가을, 54~72세까지를 겨울로 보는데, 72세가 되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자살 의식에 참여하여 절벽에서 떨어지고, 떨어진 후 죽지 않을 경우 주변인이 망치로 머리를 부숴 임종을 돕는다. 이후 죽은 이의 이름을 새로 태어날 아이가 이어받는데 그렇게 죽은 이의 삶을 이어받으며 사는 것이 이 마을의 풍습이다. 애초에 남자친구의 친구 펠레가 이들을 제물이 될 외지인으로 계획적으로 초청한 것. 90년에 한 번 거행하는 이 의식에는 9명의 제물이 필요한데 4명의 마을사람들, 4명의 외지인, 대니의 선택을 받은 마지막 희생양 크리스티안까지 총 9명의 제물이 된 것이다. 생리혈을 주스에 넣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으며 이후 관계를 하고 버려지게 되는데 그들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한 번식의 매개체일 뿐이다. 근친상간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고 마을사람들만으로는 부족한 것을 대니 일행과 같은 외부 유입자로 채워왔던 것.
하지만 가족의 상실로 인해 취약해져 있던 대니는 함께 울어주고 힘이 되어준 마을사람들에게 점점 동화되고 5월의 여왕으로 뽑힌 그녀가 크리스티안을 마지막 희생자로 선택한 뒤 희생자들이 타 죽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짓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아마도 새로운 이 집단과 사람들, 문화에 동화되었다는 것을 상징한 듯하다. 현대인의 잣대로 바라보면 기괴하고 끔찍하지만, 예로부터 인간은 각자만의 비과학적 풍습과 반윤리적 반인륜적 무속신앙을 가져왔다. 문명과 단절된 원주민 부락의 문화만 보더라도 미드소마에 나오는 호르가 마을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얀 옷을 차려입고 백야 아래 아름다운 화관을 쓴 채 벌이는 평온한 공포는 아마 이들 중 누군가 흉기나 총만 들고 있었어도 살아서 탈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비폭력적이면서도 그로 인해 오히려 더 생경하고 소름 끼치는 감정을 관객이 느끼게 한다. 10대가 가장 낮은 점수를, 30대가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데 개봉 당시 네이버 평점은 약 7.9로 내 예상보다 높았다. 영화가 취향에 맞지 않는 관객은 1점을 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랄까. 공포 영화 마니아라면 꼭 보라고 추천! 평소 공포 영화를 즐기지 않는다면 평범하고 전형적인 공포 영화 먼저 본 뒤 천천히 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