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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스 아웃> 영화 정보
아닌 밤 중의 홍두깨처럼 발견했던 추리 영화 <나이브스 아웃>. 스타워즈를 보지 않아 감독도 모르고 아는 건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뿐인데, 그의 팬도 아니라 처음부터 딱히 끌리진 않았다. 하지만 평소 미스터리와 스릴러, 추리소설 마니아라 ‘미스터리 모던 추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지나칠 수 없어 아무 기대 없이 봤던 작품이다. 결과는 월척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 스타일의 전형적인 고전 추리소설 문법을 따르지만 세련된 연출과 양파 까기 같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인물별 레퍼토리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실제로 감독인 라이언 존슨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가 아가사 크리스티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코난 도일 파지만 잘 만든 추리영화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다. 가리면서 볼 때가 아니지. 더불어 장르는 미스터리 추리물을 표방하지만 그 못지않게 블랙코미디의 성격도 강하게 드러난다. 작중 사건의 배경인 트롬비가 사람들이 각각 미국의 사회적 집단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사업가, 페미니스트, 백인우월주의자, 인플루언서 등 각 등장인물 별 개성이 뚜렷하고 면면이 다양하다. 처음엔 멀쩡해 보였던 인물도 한 명 한 명 본성이 밝혀지고 마지막 즈음엔 제대로 된 인물이라고는 거의 남지 않는 지경에 이르는데 그 과정이 우습기도, 씁쓸하기도 하다. 러닝타임 130분. 개인적인 평점은 8.5점. 드라마 셜록 홈즈 시리즈처럼 각 잡고 진지한 골치 아픈 추리 드라마 또는 영화가 별로라면 상추리영화다운 맛을 전혀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적으로 가볍고 재밌게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추천한다!
줄거리 및 등장인물 (약한 스포 있음)
유명한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 할런 트롬비가 85세 생일날 숨진 채 발견된다. 그는 소설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자수성가형 부자로, 가족들의 경제적 지주이기도 했는데, 추모식 저녁 놀랍게도 전 재산을 간병인 마르타에게 남긴다는 내용의 유언장이 발표되어 가족들은 패닉에 빠진다. 탐정 브루아 블랑은 경찰과 함께 범인을 찾기 위해 파견되는데, 슬프게도 용의 선상에 오른 것은 모두 그의 곁에 있던 가족들이다. 그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결백을 주장하던 가족들은 이내 모두가 그를 살해할 동기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블랑은 가족들과 한 명씩 인터뷰하며 알리바이와 사건의 단서, 범인의 흔적을 추적한다. 겉으로만 화목했던 이 가족들은 사실 할런의 유산 상속을 놓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각자 할런과 대립하거나 감정 상할만한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블랑은 마지막으로 할런의 간병인, 이민자 신분의 마르타를 인터뷰하는데, 거짓말을 하면 토악질을 하는 특이 알레르기가 있던 마르타가 가족들의 내밀한 속사정을 본의 아니게 증명해 준다. 블랑은 자신이 홈즈라면 그녀가 왓슨처럼 자신을 도와달라며 수사에 동행하지만, 마르타는 블랑을 경계한다. 사실 그녀도 속사정이 있었는데, 자신으로 인해 할런이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날 밤 마르타는 평소대로 할런에게 약을 주사하고 퇴근할 예정이었는데 실수로 너무 많은 양의 모르핀을 주사해 버리고, 이런 상황을 대비해 분명 챙겨뒀다고 생각한 해독제도 어째서인지 보이질 않아 당황한다. 헐레벌떡 구급차를 부르려는데 할런이 마르타를 말리며 자기가 말하는 대로 여기에서 나가 알리바이를 확보하라고 등을 떠밀고, 마르타를 감옥에 보낼 수는 없다며 자신을 위해서라도 자기의 말 대로 해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마르타가 거절하자 할런은 마르타의 눈앞에서 목을 긋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할런이 알려준 방법 대로 퇴근 하는 척한 뒤 집 뒤뜰의 덩굴을 타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 할런으로 위장해 가족들에게 목격됨으로써 마르타가 퇴근한 후까지 할런이 살아있었다는 알리바이를 만든 것이었다. 마르타는 자신으로 인해 할런이 죽었다는 죄책감과, 정황만 보면 영락없이 그녀가 할런을 죽인 꼴이라 두려움에 휩싸여 괴로워했고 설상가상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는 협박범까지 나타나자 모든 것에 지쳐 블랑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다.
결말 해석 후기 (강한 스포 있음)
사실 블랑은 처음부터 마르타를 의심했다. 그녀의 신발에 할런의 혈흔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를 알아갈수록 타고난 선한 품성과 거짓말도 못하는 알레르기에 무언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감춰진 진실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이중 수사를 해왔던 것이다. 블랑이 찾아낸 진범은 트롬비 가족 중 마르타가 유일하게 신뢰하던 휴 랜섬이었다. 사실 그는 할런의 생일날, 일주일 전 할런이 유언장을 수정해 마르타에게 전 재산을 남기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마르타가 상속 사유에 결격이 있도록 만들어, 할런의 유산 상속을 방해하기 위해 마르타의 약을 바꿔치기하고 해독제도 가지고 가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마르타는 늘 해오던 주사 투약이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약의 점도나 미세한 색깔 차를 보고 제대로 된 약을 주사했었다. 즉, 할런의 죽음에 마르타의 잘못은 없는 셈이다. 오히려 랜섬이 상황을 조작하고 증거를 인멸하려 동분서주하다가 가정부 프랜에게 들키게 되자 그녀를 죽이면서 살인죄를 추가하게 되고, 이마저 마르타에게 뒤집어 씌우려다 실패하여 진범다운 최후를 맞는다. 사실 마르타는 랜섬의 계략에 빠져 여러 번 죄를 뒤집어쓸 뻔한 위기가 있었으나,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라도 양심에 따라 바르게 대처하여 결국 그녀의 결백을 밝힐 수 있게 된다. 이런 모습은 트롬비 가문의 다른 가족들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구구절절 사전의 전말을 쓰고 싶지만, 그러자니 날이 샐 것 같아 요약하여 적어보았다. 빈틈없이 짜인 구성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고, 짬짬이 치고 들어오는 블랙 코미디도 꽤 웃겨서 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